건강을 읽다

씨름계의 악동으로 이름을 날린 씨름계의 레전드 강호동

 

 

강호동의 어린 시절

 


강호동은 마산중학교 2학년 시절 마산중학교 근처에 있는 산상고등학교에 가서 고등학교 씨름부 형님들을 씨름으로 맞붙어도 압도해 버렸다. 심지어는 이 때 얻은 엄청난 유명세로 인해 중학교 2학년 나이로 무려 경남대학교 씨름부 선수들과 씨름으로 맞붙어 박빙의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보다 5살 이상 많은 형님들과 붙어도 좀 처럼 밀리지 않는 강호동은 어렸을 때부터 씨름의 천재였다. 씨름을 어찌나 잘했는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프로 선수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같이 뉴욕으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강호동 프로에 데뷔하다

 

 


1987년 5월 1일자 동아일보에 이미 씨름 유망주로 소개되었는데 그때 키가 182cm, 몸무게가 110kg에 달했다고 한다.

 

데뷔전은 89년 3월 대전 천하장사대회 8강전이었다. 데뷔전 때부터 괴성을 지르며 등장했지만 경기 도중 양선수 모두 상대방의 샅바를 놓치게 되었고 아직 심판의 중단 신호가 없었음에도 경기가 중단되었다고 생각한 강호동이 방심한 사이 상대인 일양약품 이종식 장사의 기습적인 밧다리에 당해 넘어지면서 데뷔전에서 첫 패를 기록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만기와 붙었을 당시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이만기가 이 규정을 몰랐던 건지 허점을 보이다가 강호동이 달려들자 뿌리쳤으나 이후 강호동이 이종격투기식으로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다. 이렇게 이기고 난 뒤 인터뷰에서 본인도 데뷔 전 당시 패배에 대해 언급한다. 당시 자신도 억울했지만 이 패배가 약이 되었다고...

 

 

이때는 고3 시절에 당했던 큰 부상 후유증때문에 초반에는 활약을 못했지만 점차 부상 후유증에서 회복하고 기량을 찾았다. 그러다가 1989년 5월 일양약품으로 트레이드되면서 일양약품의 간판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데뷔 후 44회 장사씨름대회에서 백두장사로 처음으로 타이틀을 거머쥔다. 특히 준결승전에서 이만기와의 첫 공식전을 치러서 2:0으로 승리를 거두는 파란을 일으킨다.

 

그 이후 100%의 몸상태로 맞은 1990년은 이미 일양약품의 감독이 올 시즌을 이만기 vs 강호동으로 정의할 만큼 씨름판에서 강호동이 최강자로 자리매김한 시즌이다.

 

1990년 3월 성남에서 열린 18회 천하장사대회에서 씨름판의 슈퍼스타이자 마산상고 대선배 이만기와 처음으로 천하장사 대회에서 맞붙었고 그 전날 백두장사 결승에서 승리하고 준결승에서 또다시 승리하면서 대선배 이만기에게 모래를 뿌렸던 전설의 세레모니로 전국구 스타로 거듭난다.

 

 

강호동의 시대가 열리다

 

 

이만기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현역시절 온갖 괴상한 표정과 포즈와 함께 괴성을 지르고 윙크를 하고 경기 전에 덤블링을 하는 등 쇼맨쉽으로 유명했다. 훗날 1박 2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는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 기죽지 않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 한다.


"시합은 똑같은 위치 아닙니까? 선수 대 선수로서... 선배 대 후배로 시합하는 게 아니고 선수 대 선수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후배를 잘 안 따집니다. 시합 때는." - 인터뷰 중에서

 

 


1990년 3월 천하장사로 등극하면서 당시 최연소 천하장사(훗날 백승일에 의해 경신), 최단기간 5회 천하장사(이만기선수가 7년에 걸쳐 10회의 천하장사 타이틀을 보유했는데, 강호동은 불과 3년에 5회 천하장사), 당시 현역 승률 1위 기록을 보유했다.

 

강호동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당시 백두급 주력 선수들은 이만기 시대와 달리 신장 180cm 체중 100kg 전후급에서 점차 올라가 신장 180cm중반, 몸무게 120kg 내외였는데 강호동의 전성기 체급은 182cm 체중 120kg였다.

 

강호동은 당시 백두급에서도 체중과 힘이 상위권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스피드와 경기운영능력이 극강이었다.

 

그야말로 완전체. 강호동이 완벽한 기술 씨름꾼이었던 이만기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당대 최고의 스피드와 힘을 조합한 기술 씨름을 해냈던 유일한 백두급 선수였고 2년뒤 등장한 백승일과 더불어 마지막 백두급 테크니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91년 160kg의 박광덕이 입단하여 22회 천하장사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임팩트를 남기고, 그 다음해 슈퍼두꺼비 김정필이 입단하면서 백두급 장사들의 평균체중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때 최전성기였던 강호동은 변화하는 백두급 장사들의 사이즈에 고전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자신보다 40kg나 무거웠던 박광덕을 92년에 결승에서 이기고 천하장사에 등극한다.

 

당시 박광덕과의 결승전을 보면 강호동은 그 무거운 박광덕을 상대로 들배지기에 성공하며 첫판을 따내고, 뒤이어 잡채기를 성공하면서 2대0으로 앞선다. 그러나 나머지 두 판에서는 박광덕의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연이어 넘어가고 만다.

 

 

실제로 세번째 네번째 판 모두 강호동의 기술이 제대로 먹혀들어갔음에도 박광덕이 힘과 체격으로 버텨낸 다음에 이후 역습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강호동의 덩치가 육안으로도 차이가 날 만큼 훨씬 작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황소처럼 덤벼드는 박광덕의 역습을 당해내기 힘들었던 것. 강호동 특유의 들배지기가 성공한 첫번째 판에서도 기존처럼 화끈하게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넘어뜨리는 수준이였다.

 

 

 

강호동은 기술과 피지컬 모두 최고인 선수라 단기간에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적을 기록했지만, 기존의 스타일로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피지컬을 넘는 선수에게는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광덕과의 경기에서 보듯이 기술이 제대로 안 먹혀도 경기를 끌어나갈 수 있는 기술, 스피드와 거구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힘이 있었기에, 상성으로 밀리는 박광덕도 제압할 수 있었다.

일부 폄훼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당시 전성기의 강호동은 거대한 신인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강호동 은퇴 그리고 개그맨으로 데뷔

 

강호동은 23살의 젊은 나이로 씨름계를 돌연 은퇴하고, 개그맨 이경규의 추천으로 특채 개그맨으로 MBC에 들어간다. 강호동은 최근 방송을 많이 하는 서장훈이나 안정환같은 스포츠 방송인이 아니고, 정식 MBC 소속 개그맨으로 활동을 한다.

 

일부 사람들은 강호동은 개그맨으로 성공하지 못할거라 이야기 했지만, 그 말을 비웃듯히 우리나라의 최고의 개그맨, MC가 되었다. 씨름에 이어서 예능계까지 평정하면서 레전드 예능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씨름계는 강호동 이후 강호동을 이을 씨름스타의 명맥이 끊겼고, 내분까지 일어나면서 최고 인기 스포츠에서 비인기 스포츠로 몰락하고 만다.

 

최근들어서 씨름 인기를 다시 부활시킬려고 여러모로 노력을 하지만, 한번 떨어진 씨름의 대중의 관심은 좀처럼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출처) https://namu.wiki

 

​ ​

이 글을 공유합시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