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

 

고대 이집트 왕조 중기에 등장한 ‘레슬링’은 오랜 기간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온 경기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볼 수 있는 경기 방식은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으로,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레슬링 강국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고대올림픽의 주요 종목, 현대에도 사랑 받다

 

 

레슬링은 두 사람의 경기자가 일정한 규칙 하에서 겨루어 상대방의 양 어깨가 동시에 땅에 닿거나 심판의 판정으로 승부를 정하는 경기로 투기 종목 중 기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레슬링이 시행된 시기는 출토품이나 예술작품 등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왕조 중기(BC 2131∼BC 1786)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외 인도에서는 BC 1500년 이전에 시작되었으며 고전적 서사시들인 리그베다 등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BC 700년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국가도 레슬링 경기를 즐겼다.

 

그 후, 고대그리스에 계승되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고 BC 776년부터 고대올림픽의 주요 종목이 되었다.

 

 

고대올림픽 대회에서는 3판 2승제의 토플링 경기와, 레슬링과 복싱을 혼합한 것으로 한 사람이 항복함으로써 끝나는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로마인은 종래의 레슬링에 창의성을 가하여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그레코로만형의 원형이 되었다.

 

중세시대에는 기사라면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할 필수적인 무예의 하나로 장려되었다.

 

16세기 이후 무예로서의 의의가 사라지고, 순수한 경기로 탈바꿈하였다. 11세기경 유럽의 신형 레슬링이 영국에 전해졌고, 시민들 사이에도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 중 랭커셔 지방에서 파생한 경기 방식이 현재의 자유형의 원형이 되었다. 자유형은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 보급되었는데, 프로 스포츠로 시작하여 1888년 아마추어체육협회의 인정을 받은 후 아마추어 스포츠로도 널리 행해졌다.

 

 

 

올림픽 경기,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으로 나눠

 

 

경기장은 높이 1.1m를 넘지 않는 12m 사방의 대(臺)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를 비닐제의 캔버스로 덮은 후 지름 9m의 원을 그려 그 안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 이 때 원 둘레의 안쪽으로 1m 너비의 패시비티존(Passivity Zone)을 둔다.

 

선수의 유니폼으로 원피스의 싱글레트가 지정되어 있다. 경기할 때는 고간(股間)에 차는 서포터와 손수건은 의무적으로 휴대하여야 한다. 신발은 뒤꿈치가 없는 것, 양말은 백색으로 정해져 있다.

 

이 밖에 수염이나 손톱이 길면 안 되며,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거나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은 채 땀이 배었거나 하는 것도 금지한다.

 

■자유형

 

 

다리를 포함해 신체의 어느 부위라도 붙잡을 수 있으며 프리스타일 레슬링이라고도 한다. 상대방의 급소를 제외한 상·하체 어느 부분이든 잡고 넘기거나 방어하는 기술이 허용되는 경기방식으로, 영국의 랭커셔 스타일에서 유래되었다.

 

잡기·넘어뜨리기·던지기가 허용되지만 생명이나 신체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 등은 금지되어 있다. 경기자는 규칙을 위반하면 주의를 받으며, 3번 위반하면 실격당한다. 심한 공격반칙을 하면 즉시 실격당할 수도 있다.

 

■그레코로만형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적인 경기를 모방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규칙과 절차는 자유형과 같지만, 상·하체를 잡고 넘기는 자유형과는 달리 허리 윗부분만을 잡고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제한되어 있다.

 

하반신을 잡고 넘기거나 방어할 경우, 또한 발을 사용할 경우에는 반칙이 되어 점수를 빼앗기며, 심할 경우에는 퇴장까지 당하는 벌칙을 받는다.

 

초창기에는 북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1912∼1948년은 스웨덴과 핀란드 선수들이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였다. 상체가 선천적으로 강하고 리치가 긴 유럽의 각국, 즉 러시아·헝가리·루마니아 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레슬링 강국 ‘대한민국’

 

 

레슬링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때는 1935년 전후이다. 일본 유학생들이 소개했다. 1941년 4월에는 YMCA 주최로 서울에서 제1회 전조선 레슬링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며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레슬링 경기를 선보였다.

 

이후 1942년 4월 일본 도쿄 유학생팀과 조선선발팀의 경기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레슬링 경기는 해방 이후 본격화되었다.

 

1946년 3월, 조선아마추어레슬링협회가 결성되면서 같은해 11월 21일 제1회 전국아마추어 레슬링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1948년 8월에는 ‘KAWA(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로서 FILA(국제아마추어레슬링연맹)에 코리아라는 국호로 정식으로 가맹하였다.

 

 

1966년 토론토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장창선이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하였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자유형 62kg급의 양정모가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레슬링은 한국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낸 종목이 되었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자유형 68kg급의 유인탁과 그레코로만형 62㎏급의 김원기가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따냈다.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는 자유형 82㎏급의 한명우와 그레코로만형 74㎏급의 김영남이 각각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비롯하여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기록하였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자유형 74㎏급의 박장순과 그레코로만형 57㎏급의 안한봉이 금메달을 땄으며,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48㎏급의 심권호가 금메달을 획득한데 이어 2000년 제27회 시드니올림픽에서도 54㎏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레코로만형에서는 57㎏급의 김인섭이 은메달, 자유형 62㎏급의 장재성이 동메달을 거두는 등 올림픽 효자 종목으로 대한민국은 국제대회에서 레슬링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팀은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해 매진해 왔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예선은 연기된 상태이다.

 

때문에 한국 레슬링 대표팀 선수 중 도쿄올림픽 출전 쿼터를 획득한 선수는 아직 없다.

 

현재 김형주, 김민석, 남경진 선수 등이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된 상태로 우리 국가대표팀은 잠시 숨고르기 후 2020년 도쿄대회에서 베테랑 김현우와 류한수를 앞세워 금메달 사냥을 위한 훈련에 매진할 예정이다.

 

(출처) 대한체육회/체육간행물/2020년 6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칼럼 (가장 오래된 투기 종목 레슬링) (https://www.sports.or.kr/)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ko/

(이미지 출처) by flickr (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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