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

 

흑사병이란 무엇인가요?

 

흑사병은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유행 질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럽 지역에서는 1346년~1353년 사이 범유행이 절정에 달했으며, 이 범유행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소 7500만, 최고 2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347년 처음 창궐한 이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공포의 대상이였으며, 1340년대 흑사병으로 약 2천5백만명이 희생되었고, 이 때의 흑사병은 중앙아시아나 인도에서 발원하여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411년 토겐부르크 성서에 그려진 흑사병 환자

 

 

14세기 중세 유럽에 퍼져나간 흑사병은 "대흑사병"이라 불려쓰며,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사회 구조를 붕괴시킬 정도로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흑사병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유대인, 한센병 환자, 외국인 등이 흑사병을 몰고 다니는 자들로 몰려서 집단폭력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사회학적으로 비평했을 때 흑사병 기간동안 일어난 학살들은 마녀사냥처럼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었습니다.

 

흑사병 유행기간동안 벌어진 유럽인들의 유대인 학살.

 

 

감염의 원인과 증상

 

흑사병의 원인균인 페스트균은 보통의 경우 토양 속에 서식하며 간혹 설치류(다람쥐, 쥐)와 인간의 체내에 들어와 기생하면서 전파되어 흑사병을 일으킵니다.

 

■페스트균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은 13세기말 유럽과 아시아(일부지역)의 인구감소와 연이은 사람들의 죽음, 흔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인류의 종말로 대변되었던 흑사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입니다.

 

주로 쥐벼룩에 옮겨다니며, 쥐에 붙어삽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옮겨지면 흑사병이 발병하며, 흑사병이 당시의 공포 대상이었던 것을 보면 그 당시에 쥐가 많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14세기 당시의 유럽에서는 흔한 병이었으나,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희귀병이 되었습니다.

 

미셀 드란코르가 흑사병의 발생 모델을 정립한 바 있으며, 야생화된 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개들은 벼룩에 의해 감염되거나 감염된 시체를 먹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흑사병에 걸렸습니다.

 

유럽에서 있었던 흑사병의 출현, 전파, 소멸 과정에 대한 역학(疫學)의 가설 중 흥미로운 것으로는 비록 다른 종의 설치류라 하더라도 벼룩에 의해 원인균이 전파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곰쥐 뿐 아니라 원래부터 유럽에 있던 시궁쥐에 의해서도 흑사병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궁쥐는 다른 설치류와 달리 인간의 거주지에서 서식하는 생태학적 특성으로 인해 흑사병 전파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흑사병의 확산과 소강, 재확산 및 갑작스런 소멸에 대한 원인으로는 설치류와 인간의 집단 면역 형성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영국 웨이머스의 흑사병 기념 동판 (인구의 30 ~ 50%가 희생되었다)


 

흑사병의 종류

 

죽음의 무도에 그려진 흑사병

 

 

흑사병에는 증상에 따라 패혈성 흑사병, 폐 흑사병, 림프절 흑사병 세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흔히 발병하는 흑사병은 림프절 흑사병으로 전체 발병율의 75%에 달합니다. 림프절 흑사병은 원인균이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 등에 있는 림프절을 공격하여 부종을 일으키며, 초기 증상은 38 - 41 °C의 고열과 함께 구토, 두통 을 보여 말라리아로 오인되기도 하며, 증상이 진행됨에 따라 흑사병 특유의 검은 반점, 부종이 나타납니다

 

림프절 흑사병은 사람간의 직접 전염은 일어나지 않으며 벼룩을 매개로 전파됩니다.

 

폐 흑사병은 두 번째로 발병률이 높은 흑사병으로 원인균이 폐를 공격하여 폐부종을 일으키며 사망률이 95%에 달하는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발병 후 8일 이내에 80%이상이 사망합니다.

 

패혈성 흑사병은 원인균이 혈액에 직접 침투하여 일어나며 극히 드문 경우에만 나타나나 발병할 경우 단 시간안에 사망하게 됩니다.

 

■흑사병의 전염경로

 

이러 저러한 가설에도 불구하고 흑사병이 유럽에 들어온 데에는 비단길과 몽골 제국이 관련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몽골 제국은 비단길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점령하였으며, 1347년 몽골의 포위 공격이 있었던 크림 반도의 페오도시야에서 흑사병이 처음으로 창궐하였기 때문입니다.

 

페오도시야를 포위 공격했던 킵차크 칸국의 자니베크 칸은 흑사병에 걸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투석기에 담아 도시의 성벽 너머로 던져 넣음으로써 흑사병을 생물학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도시에 흑사병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페오도시야에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교역소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교역소 사람들중 일부가 시칠리아로 흑사병을 옮겨졌으며, 그 후 흑사병은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4세기 초 유럽의 기후는 중세온난기가 끝나고 연 평균 기온이 하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울 추위는 매서워지고 여름 기후도 좋지 않아 1315년에서 1317년 사이에 대 기근이 발생하였고 특히 북유럽의 피해가 심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흑사병에 의한 피해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흑사병 창궐의 결과

 

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등의 지역에서 창궐한 흑사병으로 발생한 희생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망율을 기록하였습니다.

 

■인구 감소

 

 

1346년-1353년 사이 흑사병의 전파 현황.

 

■유럽

 

유럽 지역의 인구는 흑사병으로 인해 지역에 따라 1/3 ~ 1/2 규모로 감소하였습니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희생자는 총 7천5백만 명에서 2억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럽 중세사를 연구하는 사학자 필립 데이리더는 2007년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 초기 4년간의 희생자는 통상 인구의 45% ~ 50% 로 추산되고 있으나 이는 총괄적인 수준의 기록입니다.

 

실제 유럽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망률을 보였는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는 지역에 따라 인구의 80%가 희생되는 경우도 빈번하였으며, 북부 독일, 잉글랜드 등지에서 초기 4년 동안의 사망률은 20% 정도였습니다"

 

아시아

 

중국의 원나라 시기인 1334년 허베이에서 창궐하여 인구의 90%가 사망하였으며 1353–54년 동안 중국과 몽골지역에서 2천5백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파울 페르스트 1656년 작품

 

 


1350년대 유럽의 문화는 흑사병의 영향으로 매우 음울하였습니다. 문화의 곳곳에서 염세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졌으며, 당시 사람들은 역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민간에서는 흑사병 의사인 닥터 쉬나벨 폰 롬(로마 출신의 부리 가면 박사)이 흑사병 환자의 집을 방문하면 환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설이 퍼졌으며, 닥터 쉬나벨은 새부리 가면을 쓰고 긴 검은 겉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채 지팡이를 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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