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던 사람이 더 이상 성취해야 할 목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심리적으로 허무해지는 현상을 ‘상승정지 증후군’이라 합니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정상에 선 느낌을 묻는 질문에 “기쁨은 잠깐이고 이내 허탈감에 빠진다. 마치 더 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성취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허탈함은 때론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까지 합니다.
아시안게임은 아시아지역 국가들에서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장입니다. 여기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엄청난 성취일 것입니다. 그렇게 큰 위업을 이룩한 순간 그 선수는 누구보다 만족스럽고 행복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떨까요?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언젠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잘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실 이건 운동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직장에서 승진을 거듭하다가 결국에 어느 단계에서 멈추게 될 것이고, 언젠가부터 완벽하게 끝내던 일에서 실수가 하나둘씩 생기는 경험을 할 것이며, 언젠가부터 나보다 일을 더 잘하는 후배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전에는 며칠만 집중하면 완성할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게 되고, 심지어 그렇게 오래 일하자니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가 겪는 심리를 ‘상승정지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상승정지 증후군은 앞으로 내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증상을 말합니다. 일본 게이오 대학의 오코노기 케이고 교수가 오래전에 만든 용어로 정신과나 상담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진단명은 아니고 단지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내 삶에 더 이상의 발전이나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깨달은 순간 찾아오는 허탈감, 무기력감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승정지 증후군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하게 달성한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케이고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상승정지 증후군은 어릴 적부터 사회적 성취나 직장에서의 인정과 승진을 최고의 삶의 목표로 배우고 자라난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분야에서 상승의 한계를 깨닫게 될 때 이 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회사나 조직에서 부여받은 일에 자기 인생을 전부 쏟아 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그 일의 내리막이 시작되면 자기 인생도 내리막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장은 그저 남들보다 더 나아지는 것,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으로 멈추지 않습니다. 사실 거기서 끝난다면 삶은 정말로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내가 죽으면 다 사라질 것들을 힘들게 쌓아올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내가 성취한 것들이 내 생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누군가에 의해서 이어지고 더욱 발전될 수 있다면 내 노력과 성취는 헛되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분야에서는 정점에 오른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특별히 외적인 보상을 받지 않더라도 그 자리를 이어갈 다음 세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자신의 자산을 넘겨주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상승정지 증후군의 답은 아닙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체조 종목에서는 여홍철 선수의 딸 여서정 선수가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정지한 성장의 지점에서 딸이 그 성장을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이것이 상승정지 증후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 추소비티나 선수
하지만 그 종목에서 은메달을 받은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 추소비티나 선수는 상승정지 증후군의 또 다른 대답입니다.
1975년생인 그녀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동메달을 받았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는 계속 훈련하고 조금씩 더 성장한 셈입니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우리 인생의 상승은 그리 간단히 끝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상승은 계속될 수도,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녀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올린 사람에게만 그 자산을 전수할 자격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상승정지 증후군의 답은 하나인 셈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출처) 대한체육회/2018년 09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칼럼 (목표달성! 허무함 시작? ‘상승정지 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