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이라는 종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할 수 있다’를 읊조리던 박상영 선수의 모습만큼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에 대역전 드라마를 쓰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던 박상영 선수.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기적의 희열과 동시에 펜싱의 묘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우아하면서도 격렬한 매력의 펜싱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자.
펜싱은 검을 이용하는 결투 스포츠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 펜싱은 서양에서 검이 무기로 사용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통일된 검기 형태를 갖춘 시기는 고대 로마 이후로 추정된다.
펜싱은 기본적으로 전장에서 적을 베기 위한 검의 술법으로 이용되었으나, 16세기 중기 이후 무기의 발달과 전투 형태의 변화로 인해 검법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용되던 두껍고 무거운 검 대신 ‘레이피어’라 불리는 양쪽 날이 좁고 긴 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펜싱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많은 검객들이 나타나 다양한 종류의 검술을 연구했다. 17세기 이탈리아 검객인 디그라시는 검에 따른 팔·다리의 합리적인 공격과 수비겸용의 법칙을 연구하였고, 이를 스페인의 라카란자가 이어받아 하나의 유파를 이루었다.
프랑스에서는 앙리상디데이가 프랑스류의 검법을 창조하여 기존에 사용하던 단검을 폐지하고 장검만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현재 각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펜싱의 토대가 되었다. 18세기 무렵부터는 귀족들이 검법을 교양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검 끝에는 솜방망이를 달아 보다 안전하게 검법을 즐기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펜싱이 온전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펜싱은 두 명의 선수가 검을 이용해 특정 신체 부위를 공격하며 취득한 득점으로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다. 펜싱 경기가 이루어지는 경기지면을 삐스트(Piste)라 부르며 너비는 1.5~2m, 길이는 14m에 달한다. 경기지면은 수평을 이루고 유리하거나 불리해서는 안 된다.
개인전의 경우 1세트 당 3분씩 총 3세트를 겨루어 경기 시간 내에 먼저 15점을 따내거나 더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가 승리하는 것이 규칙이다. 단체전은 총 4명이 출전하여 3명만이 경기에 나서며 1명당 1세트씩 총 3세트를 겨루어 경기 시간 내에 총점 15점을 따내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펜싱의 세부 종목은 사용하는 검에 따라 플뢰레(fleuret), 에페(epee), 사브르(sabre) 세 가지로 나뉘며 종목에 따라 공격법과 공격이 가능한 부위 등이 다르다.
펜싱의 세 가지 종목 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플뢰레일 것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영호 선수가 금메달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남현희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플뢰레의 검은 길이 110cm, 무게 500g가량이며 연습경기에서 유래된 종목인 만큼 가볍고 잘 휘어지는 검을 사용한다. 검 끝으로 상대의 몸통을 찔러야만 점수를 획득할 수 있으며, 검 끝이 아닌 칼날로 상대 선수를 타격하면 점수로 인정되지 않는다.
팔을 찔러도 득점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손잡이 가드 부분은 간단한 형태이다. 심판이 시작선언을 한 후 먼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 선수에게 공격권이 주어지며, 공격권을 지닌 선수의 득점만이 인정되고 두 선수가 동시에 득점하는 경우는 없다.
방어하는 선수의 경우에는 공격권을 지닌 선수의 칼을 막은 뒤에 공격할 수 있다.
한편,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금메달을 획득한 박상영 선수가 출전했던 종목이 바로 에페다.
프랑스어로 검을 뜻하는 에페는 중세시대 유럽의 기사들이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자 일대일로 치렀던 결투에서 유래된 종목이다. 당시에는 경기 중 피를 먼저 흘리는 쪽이 진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현재의 경기 내용도 당시의 결투와 가장 유사하다.
에페에서는 길이 100cm, 무게 770g의 검을 사용하는데, 이는 펜싱 종목들이 사용하는 검 중 가장 무겁다. 에페의 칼날은 단단하고 잘 휘어지지 않으며, 공격은 칼끝으로 하는 찌르기만 가능하며 일부 마스크 부분과 장갑 등을 제외한 신체 어느 부위를 찌르더라도 점수로 인정된다.
공격권과 방어권이 없기 때문에 누가 먼저 찔렀느냐에 따라 점수가 갈린다. 두 선수가 동시에 서로를 찌르게 될 경우에는 두 선수 모두 득점으로 인정된다. 상대방이 공격할 때 허점을 노리고 공격을 하면 득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까지도 중요한 전략으로 통한다.
더구나 동시타가 인정되므로 한두 점이라도 앞선 선수가 경기를 훨씬 수월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에페에서는 빠른 속도보다 정확하고 침착한 공격이 훨씬 중요하며, 신장이 큰 선수의 경우 조금이라도 긴 거리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유리하게 여겨진다.
사브르는 기마병들이 말을 타고 싸울 때 쓰던 검의 명칭으로,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마상검술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상전투에서는 적은 죽이더라도 말은 살려두는 것이 관례였기에 말이 다치지 않도록 적의 허리 위만을 공격했다. 따라서 사브르에서는 팔과 머리를 포함한 상체 공격만 점수로 인정된다.
사브르는 가장 빠르고 공격적인 종목으로 펜싱 종목 중 박진감이 넘치고 경기 진행도 빠른 편이다. 검의 끝을 이용해 찌르기만 인정되는 플뢰레, 에페와 달리 사브르에서는 검 끝, 칼날, 칼등 모두를 사용하며 찌르기, 자르기, 베기 모두가 가능하다.
사브르 경기를 관람하게 될 경우 심판이 ‘준비, 시작’을 외치자마자 선수들이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사브르가 플뢰레와 같이 공격권이 있는 종목이기 때문인데, 공격 자세를 먼저 취하는 선수에게 공격권이 주어지는 플뢰레와 달라 사브르는 먼저 튀어나가는 선수에게 공격권이 주어지게 된다.
또한, 점수 1점을 획득하는 것이 대다수 1~2초 이내에 결정이 나므로 사브르에서는 민첩함과 빠른 속도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출처) 대한체육회/체육간행물/2020년 2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칼럼 (아하! 그 종목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한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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