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브레이크가 걸리면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 아무래도 슬럼프인가 봐.” 예고 없이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어 우리를 괴롭히는 슬럼프에 대해 알아보고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보자.
올해도 벌써 3개월이 지나갔다. 아마도 다들 새해 시작과 함께 뭔가 결심한 것이 있을 것이다. 그 결심은 주로 변화에 대한 것이리라. 우리가 하는 결심 속에는 지금의 내 모습에서 좀 더 나은 어떤 상태로 변화하겠다는 목표,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물론 모두가 그 계획을 실현하지는 못한다. 작심삼일의 함정을 어떻게 간신히 넘기고, 지금까지 최소한 3개월간 새해 결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계속해왔다면 이제 나름대로 성과를 체험할 시점이다.
그것이 공부든 운동이든 다이어트든 노력을 쏟아 부은 초창기에는 상당히 큰 변화를 경험하고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변화와 성장이 마냥 지속되지는 않는다.
어느 시점에든 이전만큼 노력해도 더 이상 효과를 얻지 못하는 순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훈련이나 연습을 반복해도 효과가 없고 실제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 경우를 ‘슬럼프’(slump) 혹은 침체기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발전이 더뎌지거나 멈춘 상태를 플래토(plataeu) 혹은 ‘고원현상’으로, 점차 퇴보하는 상태를 슬럼프로 구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상황에 빠지면 아무도 자신이 지금 플래토인지 슬럼프인지 확신할 수 없다. 특히 답답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가 일시적으로 침체기에 빠졌다면, 그래서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다시 발전할 수 있을 것이고, 내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깔끔하게 포기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다.
나중에 후회가 될까봐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이 계속 노력을 쏟아붓기도 고통스럽다. 거의 모든 운동선수들은 경력을 키우는 도중에 한 번 이상 슬럼프를 겪는다. 그중에는 이 고통을 못 이기고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부터 체육생리학이나 운동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슬럼프의 원인을 밝혀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슬럼프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훈련을 반복할수록 그 효과가 감소하는 것이 슬럼프의 시작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슬럼프의 구체적인 계기나 해결방법은 사람마다 다른 듯하다. 빼어난 활약으로 신인상을 받은 선수들이 주로 겪는 2년차 징크스도 슬럼프의 일종이며, 누적된 피로나 부상도 결국 슬럼프로 이어진다.
어쩌면 슬럼프는 당연한 자연법칙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운동이나 연습, 노력을 통해서 실력을 향상시키고 체력을 키우고 실적을 올리는 건 ‘변화’다. 아무리 좋은 방향의 변화라 할지라도 스트레스와 피로를 누적시킨다.
그래서 더 이상 변화가 필요 없는 평형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대부분 당연히 발전과 성장을 원하지만 그것이 끝없이 계속되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들 그 변화의 끝에는 안정된 상태에서 여유를 누리며 느긋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점이다. 우리는 변화 그 자체가 좋아서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머물러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서 더 나은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정체, 즉 안정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슬럼프는 바로 그런 안정된 상태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일찍 찾아온 안정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룩해낸 다음에 그것이 찾아왔다면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물러섰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사소한 실수는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문제에 흔들려 침착함을 잃으면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심각한 슬럼프로 발전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 평정을 찾으려면 일단 하던 일을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마치 남처럼 여기며 살펴보는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언제나 당사자들보다는 옆에서 훈수를 두는 제3자가 더 판을 잘 읽는 것은 그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봐야 문제가 뭔지 알 수 있다. 가능하다면 전문가나 나를 잘 아는 제3자의 조언을 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신감의 회복도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슬럼프는 그 자체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더 큰 여파를 미친다. 얼마 전까지 잘해내던 무엇인가를 잘하지 못한다면 자신감이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내가 이룩한 것들을 확인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내가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를 돌이켜보라. 지금까지 이룩한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으리라. 단기 목표를 세워보는 것도 방법이다.
작년의 잘나가던 나 자신과 비교하지 말고, 지난 주 혹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아지는 것에 집중하는 거다. 그 작은 진전이 쌓이는 만큼 내 자신감도 다져질 것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적응력이 있다. 무엇이든 적응할수록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만큼 그 효과도 줄어든다. 따라서 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시련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슬럼프는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나를 돌이켜보고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출처) 대한체육회/체육간행물/2018년 03월호/클릭!스포츠/소개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슬럼프)
(https://www.sport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