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란 무엇인가요?

 

 

스탠퍼드 감옥 실험(루시퍼 이펙트)은 스탠퍼드 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 교수가 1971년에 한 심리학 실험입니다.

 

70명의 지원자 중 대학생인 24명이 선발되어 죄수와 교도관역을 맡았으며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 건물 지하에 있는 가짜 감옥에서 살았습니다. 역할은 무작위로 정했으며, 그들은 자기 역할에 예상보다 잘 적응했고, 교도관들은 귄위적으로 행동하면서 심지어는 가혹 행위를 하기까지 했습니다.

 

2명의 죄수들은 초기에 너무 화가 나서 중간에 나갔으며 모든 실험은 실험 시작 후 6일 만에 갑작스럽게 종료되었습니다.

 

실험의 진행상황과 결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쟁의 여지가 있고, 촬영된 모든 실험장면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그로 부터 30년 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 짐바르도의 실험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었습니다

 

 필립 짐바르도 (바르샤바 2009년)

 

■필립 조지 짐바르도

 

필립 조지 짐바르도(Philip George Zimbardo, 1933년 3월 23일~)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스탠퍼드 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SPE)을 수행하기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부 미군들이 이라크인 포로들을 잔혹하게 다루는 행위를 분석하여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는 저서도 쓰기도 했습니다.

 

 

실험의 목표와 과정

 

 

짐바르도의 연구팀은 수감자와 교도관 각각의 특징과 감옥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는 생각을 시험해보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고용된 참가자들은 2주간 '감옥'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그 대가로 $15의 일당을 받도록 약속합니다.

 

70명의 지원자 중, 짐바르도는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육체적 및 정신적 장애가 없으며, 과거 범죄나 약물 남용 이력이 없는 남자 24명을 선발했으며, 24명은 모두 미국이나 캐나다의, 중산층 가정 출신의 좋은 교육을 받은 남자 대학생들 이었습니다.

 

'감옥'은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건물인 조던 홀의 지하실에 위치했고, 대학생인 실험 도우미들은 수감자였으며, 짐바르도는 교도소 감독관이었습니다.

 

짐바르도는 참가자들이 그가 원했던 방향 감각 상실, 자아감 상실, 몰개성화와 같은 것을 촉진할 수 있도록 특별한 상황을 마련했습니다. 최초의 실험에서 24명의 선발인원 중 교도관 9명, 죄수 9명 만이 참가 하였습니다.

 

 

나머지 인원은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투입되기 위해 대기하였으며, 이는 조던 홀 지하에 제작된 감옥의 크기가 24명 모두를 동시에 실험하기에 협소하였기 때문입니다.

 

교도관은 3명씩 3조로 나뉘어 하루 8시간씩 3교대 하였으며, 죄수들은 3개의 감방에 각각 3명씩 수용되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 중 교도관역을 맡은 사람은 무기, 셔츠 및 바지가 카키색인 가짜 교도관 옷을 받았습니다. 눈을 마주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선글라스도 착용했습니다.

 

수감자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불편하도록 크기가 맞지 않는 겉옷과 머리에는 스타킹을 씌웠고,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을 이름 대신에 옷에 박힌 그들의 고유 번호로 불렀습니다.

 

즉, 이 상황에서 교도관들은 모든 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수감자들은 어떠한 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감자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수감자들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Palo Alto 경찰서는 모든 수감자들에게 하는 행위(지문 채취, 범인 식별용 사진 찍기, 미란다 원칙 설명하기 등등)를 해서 짐바르도 교수를 도왔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이송되어서 실시간으로 감시를 당하며, 그들의 새로운 일체성을 부여받을 가짜 감옥에 도착했습니다.

 

 

실험의 결과

 

실험은 눈깜짝할 새에 통제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교도관들에게서 굴욕적인 대우와 가학적인 행위를 받은 수감자들은 괴로워했으며 그 행위들은 용인되어 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결국 억제로 인한 반란을 초래했습니다. 실험이 끝날 때까지 심각한 감정적 혼란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날에는 별탈없이 지나갔지만, 둘째날에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교도관들은 원래보다 더 진지하게 자신들에 역할에 몰두했으며, 상관인 연구 직원들의 허가 없이 소화기로 수감자들을 공격해서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겨우 36시간이 흐른 후, 필립 짐바르도가 말하기로는 한 수감자가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8612번(수감번호)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리 지르고 저주하고 격노하는 등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가 매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에 대해 조금 시간이 걸렸고 연구원들은 그를 풀어줘야만 했습니다.

 

실험에서 빠진 8612번이 친구들을 데려와서 남은 수감자들을 내보낸다는 소문이 돌았고, 교도관들은 감옥을 철거하고 수감자들을 안전한 다른 장소로 옮겼습니다. 어떠한 시도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교도관들은 감옥을 짓느라 헛수고 했다는 것에 대해 화가 치솟았고 수감자들을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배운 방법 대로 죄수 번호를 반복해서 부르라고 강요했으며, 그것이 자신들을 증명하는 새로운 것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강화시켰습니다.

 

 

교도관들은 머지않아 이 번호 세기를 수감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이용했으며 죄수 번호를 틀린 자에게는 평소보다 더욱 오래 기합을 주는 등의 신체적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급격히 위생상태가 악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생리적 현상을 못하도록 만들기도 했으며, 교도관들은 수감자들이 그들의 변기통을 비울 수 없는 벌을 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매트리스는 이러한 엄격한 감옥에서는 보물이었으며 교도관들은 매트리스를 뺏어서 콘크리트 위에서 재우는 등의 벌을 주기도 했고, 몇몇 수감자들은 벌거벗은 채로 다니도록 강요하는등의 성적 모욕도 했습니다. 

 

짐바르도는 그의 실험에 점점 몰두 했으며 적극적으로 이 감옥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4일째, 몇몇 수감자들이 탈옥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 짐바르도와 교도관들은 그들을 더욱 안전한 지역 경찰서로 보내려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짐바르도의 실험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몇몇 교도관들은 폭력적으로 변했으며, 실험자들은 교도관 중 3분의 1이 진짜로 잔학한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실험이 일찍 끝났을 때 교도관들 대부분은 화를 냈습니다.

짐바르도는 참가자들이 그들의 역할에 완전히 흡수 되었다고 말하며 그들은 이것이 실험인데도 가석방을 위해서라면 벌금을 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가석방 신청이 전부 거부되었긴 했지만 실험에서 나간 실험 참가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뿌리 깊숙이 감옥에 흡수가 되었으며 그들 스스로를 수감자라고 생각 했습니다.

 

짐바르도의 여자친구인 크리스티나 마슬락이 이 실험에 초대 받았을 때 감옥의 엄청난 실상을 본 후에 당장 이 실험을 그만두라고 짐바르도에게 얘기했으며 짐바르도는 실험을 끝냈습니다.

 

짐바르도는 이 감옥에 대해 본 50명 이상의 사람 중에 도덕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은 마슬락 혼자였다고 말했습니다. 2주 동안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불과 6일 만에 끝이 났습니다.

 

 

실험의 결론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14일로 예정되었던 실험을 1971년 8월 20일에 6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사람들이 합법적인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제도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을 때 사람들의 민감성과 복종을 입증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 실험은 인지부조화와 권력의 힘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심리학에서 이 실험의 결과는 귀인 이론을 지지하기도 했으며, 다르게 말하자면 이 상황은 그들 각자의 개인적 성향보다는 참가자의 행동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시험관의 명령에 의해 타인을 충분히 감전시킬 수 있는 전류를 내보내는 또다른 유명한 실험인 밀그램 실험과도 양립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실험이 끝나고 나서 산 쿠엔틴 형무소와 아티카 형무소에서 끔찍한 반란이 일어났으며 짐바르도는 그가 실험에서 얻어낸 것을 미국 하원 사법부 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유사한 사건

 

■BBC 감옥 실험

 


엑스터 대학교와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알렉스 해슬램과 스티브 레이쳐가 2002년에 BBC 감옥 실험을 시작했습니다.BBC에서는 이 실험을 찍어서 실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지원도 해주었습니다.

 

 

이 실험의 반향은 짐바르도의 것과는 달라서 폭정, 스트레스, 리더십에 대한 많은 출판물이 나오게 되었으며, 더욱이 스탠퍼드 실험과는 다르게 이 실험은 British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Social Psychology Quarterly와 같은 학술 잡지에도 나왔습니다.


BBC 감옥 실험이 BBC 프로그램으로서 등장했을 초기에 짐바르도 교수는 '다시는 반복 되지 말아야 한다' 라며 우려를 표했으며, 그는 "단지 감각적인 방송프로그램 또는 서바이벌 타입의 방송 흥행을 위해서 지금은 비윤리적이라고 고려되는 실험을 재수행해서는 안된다. 브리티시 대학교의 심리학 학부가 연관되어 있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BBC 감옥 실험에서는 스탠퍼드 실험에서와 달리 방송이 불가능할정도의 비윤리적인 문제점 (스탠퍼드 실험에서는 '나체 쇼를 강제'하거나, '손으로 변기청소 강제' 등의 문제가 일어났다) 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천성보다 환경' 을 골자로 하는 실험의 핵심에 있어서는 두 사건의 결과 자체가 비슷하였습니다.

 

한편 BBC 감옥 실험에서도 스탠포드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짐을 고려하여 전체 10일 중 8일 또는 9일차에 실험을 중단하였습니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소재로 한 영화

 

▲(영화)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

 

《더 스탠포드 프리즌 엑스페리먼트》(The Stanford Prison Experiment)는 미국에서 제작된 카일 패트릭 알바레즈 감독의 2015년 스릴러 영화입니다. 올리비아 썰비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브렌트 이머리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죄수나 간수 역할을 하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수행된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필립짐바르도

 https://ko.wikipedia.org/wiki/스탠퍼드감옥실험  
 https://ko.wikipedia.org/wiki/스탠포드프리즌엑스페리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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