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

 

모차르트, 비틀즈, 빌 게이츠 등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들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맬컴 글래드웰이 2009년 출간한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 정말 1만 시간이면 충분할까? 그 시간이면 어떤 경쟁도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최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시간이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

 

 

오직 달린다

 

 

“10초 7, 10초 4, 좋아~ 버텨~ 버텨~ 할 수 있어~ 생각 차이야~ 할 수 있어!”
“맥박 떨어뜨리고…… 빨리 회복하자~ 다시 출발, 9 초 6, 9초 5, 좋아!”


트랙을 최고의 속도로 강하게 돌고, 짧은 시간 안에 체력을 회복한 뒤, 곧바로 다시 트랙을 도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한창인 진천선수촌 빙상장.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고 기록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송경택 감독과 이재경 코치의 구호 소리가 멈추자 이제껏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 헉…”
그야말로 선수들의 모든 기운을 쏟아 붓게 만드는 체력 훈련은 서늘한 얼음 위에서도 순식간에 온몸을 땀으로 젖게 했고, 빙상장 전체를 울리는 가쁜 숨소리를 절로 내뱉게 했다.

 

“8월에 선수촌에 합류한 뒤론 일주일에 두 번 학교를 다녀오는 것 외에 이곳에서 합숙 훈련을 하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대회를 치르고 있습니다. 주간 계획에 따라 체력을 올리는 훈련 외에도 스피드·기술 훈련 등을 균형 있게 소화하는 중이에요.”


평창올림픽 2관왕. 그런데 최근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에서는 계주 한 종 목에서만 은메달을 획득해 우려를 낳았던 최민정 선수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11월 12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에서는 평창올림픽 때와 마 찬가지로 1,500m, 3,000m 계주 두 종목에서 우승을 거두며 ‘역시 최민정’이라는 말로 건재함을 알렸다.

 

“쇼트트랙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라 대회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전체 시즌을 길게 보면서 매 대회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 게 좋은 결과도 따라 오더라고요.”

 

좁은 트랙에서 많은 선수들이 얽히고설키며 경쟁을 치르다 보니 뜻하지 않은 일도 종종 벌어지는 종목이 쇼트트랙. 그래서 성적은 굴곡을 그릴지 모르지만 최민정 선수의 시선은 언제나 보다 길게, 먼 곳을 향한다.

 

 

어차피 정답은 ‘스케이트’

 


빙상장 특유의 차고 시원한 바람. 6살이었던 최민정 선수는 그 바람이 좋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빙상장의 첫 인상이었고, 스케이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아버지가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그 사이에 끼워져 있 던 전단지를 보셨대요. 거기에 쇼트트랙 특강이 열린다 는 내용을 보곤, 재미삼아 제 손을 잡고 아이스링크장에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우연인데 그게 지금의 저의 운명을 바꿔버린 일대 사건이 된 거죠.”


6살 꼬마가 스케이트가 뭔지, 쇼트트랙이 뭐가 좋은지 어찌 알았으랴. 하지만 링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쌩쌩 달려가는 선수들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고. 특히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 가는 듯한 그 기분은 결국 우연을 운명으로 바꿨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운동을 마냥 즐길수만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넌지시 운동과 학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와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나중에 어떤 게 더 미련이 많이 남을까 고민했어요. 그랬더니 답이 바로 나오더라고요. 그때 선택을 참 잘한 것 같아요. 스케이트의 매력이요? 일단 타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요, 탈 때마다 조금씩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좋아요.”


땅이 꺼질 듯 거친 숨을 턱턱 내뱉을 정도로 매번 훈련은 고되지만 한 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최민정 선수. 조금씩 스피드를 내어 한계선을 넘어설 때의 짜릿함을 진즉에 예감한 까닭인지, 스케이트 선수로서 그녀의 인생은 그 이후 오직 앞만 보며 직진 중이다.

 

98년생 최민정, 그 흔들림 없는 청춘

 

 

 

“하루에 200바퀴 정도 되려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창 훈련할 때는 운동하고 밥 먹고, 운동하고 밥 먹고만 수만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계속 반복합니다. 그렇게 땀 흘리며 훈련에 최선을 다하고 시합에 임할 때, 그때가 제 전성기이죠.”

 

2015년 생애 처음 출전한 국제빙상경기연맹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천재 소녀’라고 불렸던, 그때만 해도 최민정 선수는 대표팀 막내였다. 그런데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어느새 대표팀 중간쯤에 서 있더라며 웃는 그녀. 그 시간만큼 국제 선수들의기량도 출중해져 라이벌이 많아졌고, 국가대표팀에도 실력 좋은 신예 선수들이 속속 등장해 경쟁이 치열해졌다.

 

“스케이트는 체력이 뒷받침 된 상태에서 스피드와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목입니다. 보통은 스피드를 내서 치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못지않게 섬세한 기술들이 필요하죠. 사실 저의 부족한 면이 바로 이런 기술적인 면입니다.”


스피드라면 이미 세계 원톱에 올랐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보강해야 할 점이 많다고 겸손해하는 최민정 선수. 그래서 시즌을 늦게 시작한 만큼 지금은 체력과함께 기술을 끌어올리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 막바지 준비 중인 월드컵 3차 대회의 목표는 역시 금메달일까?

 

“그것보다 부상 없이 경기를 시작하고, 부상 없이 경기를 마치는 것이 제일 큰 목표입니다. 경기에 나설 때면 매번 경기 흐름을 잘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죠. 성적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니까요.”


98년생으로 스무 살이 된 최민정 선수는 올해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에 진학하며 새내기 생활을 시작했다. 아직 얼음을 지치고 나가는 일이 더 좋아서 국가대표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선수생활을 마친 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학업도 소홀히 하고 싶진 않다고.

 

“예전부터 김연경 선수나 김연아 선수와 관련된 기사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국가대표로서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참 존경할 만한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 못지않은 멋진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의 자리는 이곳. 그래서 오늘도 다시 빙상장이다. 과연 오늘은 또 몇 바퀴나 트랙을 돌았을까?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돌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졌다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 스케이트라고 말하는 그녀이기에 오늘도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의 시간은 얼음 위에서 흐른다.

 

(출처) 대한체육회/체육간행물/2018년 12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칼럼 (턱밑까지 숨이 차오를 때, 한 번 더!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 (https://www.spor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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