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

 

전 세계 사격의 정점에 서 있는 선수가 있다. 베이징, 런던에 이어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사격 종목 최초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다.

 

선수로서 모든 걸 이뤘고 나이도 불혹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여전히 ‘최고의 현역’이다. 그렇기에 진종오가 지금껏 써 내려 온 신화 또한 여전히 ‘연재 중’이다.

 

 

변곡점에서 일궈 낸 값진 우승

 

 

지난 6월 20일, 경남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열린 2019 한화회장배 전국 사격대회에서 진종오가 또 한 번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10m 공기권총에서 244.1점으로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종목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2019 도하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 및 도쿄올림픽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여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였기에 더욱더 뜻깊은 성적. 진종오는 “가장 기뻤던 우승 중 하나”라며 말을 이었다.

 

 

 “2004년부터 몸담았던 KT사격선수단에서 올 초 서울시청으로 이적했어요. 익숙한 둥지를 떠나 새롭게 터를 잡아야 했던 만큼 여러 가지로 부담이 컸죠.

 

더군다나 올림픽에서 3연속 금메달을 딴 주종목 50m가 폐지되면서 마음고생도 적잖이 한 터였는데, 이번에 우승하면서 그런 것들이 상당 부분 날아간 느낌이에요. 그래서인지 올림픽 금메달 못지않게 굉장히 기뻤어요. 집에서 혼자 기록 조회하면서 몇 번이고 주먹을 불끈 쥐었을 정도죠.(웃음)”

 

 

열일곱 살에 처음 총을 잡은 진종오는 지난 24년간 사격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어느덧 마흔, 올림픽만 네 번 출전한 불세출의 백전노장이다.

 

일반적으로 서른이 넘은 운동선수들은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조금씩 떨어지다가 자연스럽게 은퇴의 길을 걷지만, 진종오만큼은 얘기가 다르다. 지독한 자기 관리와 상황에 따른 훈련 변화로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는 최근 사격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서울시청 이적 후 스포츠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맺으며 그 발판을 만들었다.

 

올 초부터 경남대학교 체육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6월 중순부터 방영 중인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에서는 조기축구팀 멤버로 활약하며 ‘사격의 신’ 이면에 숨어 있던 ‘인간 진종오’의 친근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최정상 사수 비결, ‘강철 같은 정신력’

 

 

누가 뭐래도 진종오의 본류는 사격이다. 이를 잘 알기에, 그는 바쁜 와중에도 사격 훈련에 한 치 소홀함이 없다. 서울시청은 진종오의 이적 과정에서 ‘최고의 베테랑인 만큼 훈련과 대외활동을 믿고 맡기겠다’고 약속했고, 이는 지금까지 완벽하게 지켜지고 있다.

 

덕분에 진종오는 그의 말마따나 ‘방목 환경’에 놓였는데, 자유에는 그 이상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기에 사격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적정선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쓸모없어졌다는 것은 성장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씁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사격계는 물론, 이외의 여러 방면에서도 쓸모 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그러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어 나에게 걸맞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하죠. 요즘 들어 폭넓어진 저의 활동들은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종오가 줄곧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이유, 그 중심에는 ‘단단한 정신력’이 자리 잡고 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50m 권총 결선, 금메달이 유력했던 그는 딱 한 발을 실수하는 바람에 은메달을 땄다. 이 자체도 대단한 성적임이 틀림없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한층 진했나 보다. 그에게 비난 아닌 비난이 쏟아졌다.

 

이쯤되면 의기소침해질 법도 한데, 진종오는 달랐다. 비난을 단순한 욕이 아닌 ‘절치부심 하는 주재료’로 사용했고, 한층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틀렸음을 성적으로 증명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50m 권총 결선에서 그는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벌였다. 칼 위를 걷는 듯한 긴장의 연속, 진종오는 마지막 발에서 0.2점 차이로 2위를 따돌리고 신승을 거뒀다.

 

그러자 그의 이름 뒤에 ‘역전의 명수’라는 별칭이 붙었다. 사격이 소위 ‘멘탈 싸움’임을 감안하면, 이렇듯 강한 정신력이 그의 화려한 선수생활에 커다란 보탬이 됐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사격의 신’은 여전히 ‘현역’

 

 

은퇴. 최근 진종오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 하나지만, 동시에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량이 여전하다. 주 종목인 50m는 끝내 폐지 수순을 밟았지만, 사실 10m도 그가 자신 있게 쏘는 종목이다.

 

베이징올림픽 10m에서는 은메달을 땄고 런던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번 한화회장배 10m 우승으로 이어졌다.

 

“아마 도쿄올림픽이 선수로서 마지막 올림픽으로 남을 것 같아요. 50m는 폐지됐지만, 10m도 자신 있는 만큼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따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마흔을 넘겼다는 이유로 은퇴에 관한 질문을 많이들 던지시지만 저는 아직도 현역 선수고, 따라서 현역 이후의 삶을 벌써부터 구체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다양한 활동과 노력을 통해 준비는 내실 있게 해야겠지만요.”

 

 

사격 베테랑인 만큼, 진종오는 50m 대신 신설된 혼성 종목에 대한 의견도 내놓았다. 치열한 경쟁도 좋지만, 경쟁만큼이나 혼성팀의 팀워크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배드민턴처럼 궁합이 잘 맞는 선수들끼리 팀을 꾸려 오래도록 호흡을 맞추면 올림픽 금메달도 가능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사격계와 선수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의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렇듯 사격은 여전히 진종오의 인생 전반에 깔려 있다.

 

도쿄 올림픽을 치른 후, 나아가 은퇴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직은 우리도, 그리고 진종오 자신도 ‘올림픽 3연패 사수’를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야 할 시점과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진종오는 여전히 ‘현역 사격의 신’이다. 
 

(출처) 대한체육회/체육간행물/2019년 7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칼럼 (사격을 넘어 신화가 되다 사격 국가대표 진종오) (https://www.sports.or.kr/)

(이미지 출처) by flickr (www.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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