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이 태동기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정말 주몽의 후예라서 활을 잘 쏘는 것이냐?”는 우문을 던지면, 양궁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윌리엄 텔은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두고 활을 쐈다고 하지만, 스위스는 양궁 강국이 아니다.
양궁 용어 중에 ‘로빈 후드 애로우’라는 것이 있다. 앞서 쏜 화살을 둘로 쪼갤 정도로 정교한 활 솜씨를 일컫는 말이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로빈 후드를 통해 많이 알려진 장면이다. 하지만 로빈 후드의 나라 영국도 양궁 국제무대에서는 큰 성과를 낸 적이 없다.
한국 양궁의 성공신화는 민족성 또는 DNA의 산물이 아니라, 선수육성 시스템과 세계표준의 양궁기술을 향한 지도자들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양궁의 양대 산맥은 미국(남자)과 소련(여자)이었다. 한국은 심지어 아시아권에서도 일본에 뒤졌다. 그 때는 일본에게 얼마나 멸시를 당했는지 모른다.
딱 한번만 이겨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대회에서 일본 코치들이 몰래 한국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캠코더로 찍어간다.
한국 양궁의 성장 비결은 ‘표준화된 지도 매뉴얼’에 있다. 대부분의 종목이 그렇듯, 양궁 역시 외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의 일본처럼 우리도 1970년대까지는 유럽 선수의 경기장면을 담기 바빴다.
하지만 그들의 체격조건은 한국 선수와 달랐다. 지도자들은 우리 선수들의 체격에 맞는 기술들을 연구했다. 그 중심에 섰던 것이 1980년 초반 창립된 ‘궁우회(현 지도자협의회)’라는 조직이다.
궁우회의 뿌리는 1970년대 말 영·호남 지도자들이 만든 ‘태극회’다. 여기에 서울·수도권 지역 지도자들도 합심하면서 궁우회가 탄생했다.
궁우회의 회원은 전국 각지의 지도자들이었다. 연간 수 차례 세미나를 열어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그 문제점을 짚으며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갔다. 입술의 정 가운데 현을 두지 않고, 입술에서 약간 옆으로 빗겨 현을 당기는 ‘사이드 앵커’도 여기서 나왔다.
서양선수들보다 어깨와 팔꿈치 사이는 길고, 팔꿈치와 손끝 사이는 짧은 한국 선수들의 신체적 특성을 반영한 기술이다.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토론한 성과물이 한국양궁의 지도 매뉴얼이다.
덕분에 한국 양궁은 지도자 간에 기술적 단절이 적다. 학생선수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더라도, 큰 틀에서 기술과 자세에 대한 지도법 변화가 없기 때문에 연속성 있게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킨다.
이제 궁우회의 토론 기능은 대한양궁협회에서 담당한다. 대한양궁협회는 연간 1회 4박 5일간 지도자 강습회를 열고, 초·중·고·대학 일반 모든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을 만든다. ‘
더 나은 기술 습득’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렸기에, 양궁은 아마추어 체육단체들 가운데 가장 파벌 갈등이 적은 종목으로 손꼽힌다. 지도자들의 열정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이유다.
한국 양궁이 성공을 거두자 세계가 주목했다. 1991년 석동은 감독이 이탈리아대표팀을 맡으며 외국진출 1호 지도자가 됐고, 이후에도 수많은 양궁인들이 해외에 진출했다.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한국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은 세계양궁의 표준이 됐다. 특히 우리와 체격조건이 비슷한 아시아권 선수들의 자세와 동작은 대부분 한국 선수와 비슷해졌다. 이제 한국의 훈련비법은 사실상 모두 노출된 상태다.
다른 국가가 따라오면 한국 양궁은 새로운 훈련 기법을 고안하며 한 발짝씩 전진했다. 대한양궁협회는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시발점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양궁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서향순이 금메달을 따면서 봄날을 맞았다.
하지만 서울올림픽(1988년)을 앞둔 1987년 호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노골드의 치욕을 당했다. 당시 대한양궁협회는 협회 차원에서 획기적인 훈련 강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양궁이 멘탈 게임인 만큼 정신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11m 하이다이빙, 번지 점프, 밤 12시부터 새벽까지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며 담력 쌓기 등이 시작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HID(북파공작원) 훈련, UDT(수중파괴반) 훈련, 공수특전단 훈련, 고공 훈련 등도 실시했다. 한밤중에 천호대교에서 여의도 63빌딩까지 걸어가는 훈련도 실시했는데, 이는 정신력, 체력 및 시차적응 훈련까지 겸한 것이었다.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파주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제주월드컵경기장도 찾았다.
한국 양궁은 대표선수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적다. 기존의 명성과 외부 압력을 배제하고, 수개월간의 평가전을 통해 철저히 실력 위주로 뽑기 때문이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지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피드백 과정을 거쳐 마련한 방식이다.
(출처) 대한체육회/2015년 5월호/스포츠하이라이트/스포츠파워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양궁, 왜 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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