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몸의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지만 동시에 늘 부상의 위험을 동반하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전문 선수들은 물론 취미로 생활스포츠를 즐길 때에도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심한 부상을 입은 경우 심하게는 나은 후에도 다시는 그 운동을 즐기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공포, 바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한 쇼트트랙 계주팀의 김아랑 선수는 1년 전에 심각한 부상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전국체전 경기 도중 넘어지면서 상대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왼쪽 뺨을 심하게 베인 것입니다.
눈을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상처가 너무 심각해서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지금도 김 선수의 얼굴에는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운동종목에서 부상을 입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나오며 그들 중에는 부상으로 인해 선수경력을 포기하기도 하고 심지어 영구적인 장애를 얻기도 합니다. 이런 부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트라우마(trauma)는 원래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우리나라에 2014년부터 만들어진 ‘외상전문센터’의 원래 명칭도 ‘트라우마 센터’입니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이 단어를 들으면 몸의 상처 보다는 심리적인 상처를 떠올리곤 합니다.
심리적인 외상이라는 개념이 이 단어와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몸과 마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몸에 충격이 오면 당연히 마음도 충격을 받습니다. 앞서 말했듯 운동선수에게 있어 부상은 정도에 따라서 더 이상 운동을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건입니다.
마음에 충격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예상 밖의 엄청난 부상을 입은 선수들은 그 부상을 입던 순간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까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특별히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고가 실질적으로는 끝났음에도 그 순간의 영상, 그때 느꼈던 감정 등이 자꾸 떠오르거나, 그 사건에 대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꿈을 꾸거나, 마치 그 사건이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환각을 경험한다면 PTSD라고 할 수 있습니다.
PTSD는 다양한 증세로 나타납니다.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일이 벌어졌을 때 평소와는 달리 갑자기 멍청해지는 사람도 있고,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거나 그걸 화제에 올리는 것 자체를 기피하고, 그와 관련된 활동이나 사람조차 기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건 자체를 마치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기억 못하거나, 대인기피증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김아랑 선수에게도 트라우마 혹은 약간의 PTSD 증상이 있었습니다.
1천5백 미터 경기에서 아웃코스로 상대 선수를 제치던 순간에 부상을 입었던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역시 같은 상황에서 멈칫하는 바람에 부진한 성적을 냈다고 한 인터뷰에서 토로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심각한 트라우마는 실제 죽음 혹은 죽음이 떠오를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거나, 어떤 순간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청난 무력감이나 공포를 경험한 경우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끔찍하고 심각한 사고라도 내가 충분히 적절하게 대응해서 그 순간에 문제를 해결했다면 트라우마가 되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무력감이 마음에 계속 상처로 남는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무력감입니다.
그렇다면 무력감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효능감, 다시 말해 내가 뭔가를 잘해낼 수 있다는 사실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작은 식물, 혹은 반려동물을 잘 보살피는 것도 효능감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며, 오늘 하려고 계획했던 작은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는 것도 효능감을 키우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신의 노력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내가 결코 무력한 존재가 아님을 몸으로 깨닫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물론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내가 트라우마를 얻은 그 곳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일을 시도하는 것이리라. 전문적인 도움을 통해 적절한 준비가 된 상태에서 비슷한 상황을 직면하고 대응해 봄으로써 내가 정말로 온전히 무력하지는 않음을, 그 상황에서 내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에게는 그것이 결국 자기가 부상을 입었던 그 경기장으로 돌아가서 자신에게 부상을 입힌 그 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되곤 힙니다.
김아랑 선수가 단체전에서 승리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부상을 입었던 바로 그 종목에 다시 출전함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해낸 용기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부상을 당합니다. 상처 입은 곳에는 흉터가 생기지만, 그 흉터는 부러진 뼈를 단단하게 하고, 찢어진 살을 더 두툼하게 만들어 보호하려는 생명력의 결실입니다.
트라우마는 나를 약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깊은 상처지만, 일단 한번 극복한 트라우마는 더 이상 내 약점이나 흉터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훈장이 됩니다.
(출처) 대한체육회/2018년 02월호/클릭!스포츠/진단 (누구나 겪는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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